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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 of song

밥줄 Short Ver.

 

촬영 김선교

편집 김선교

 

 

 

 

 

 

 

밥줄  

  # 2. 가방집 김정명 할아버지

 

 “내 한이 이 가방 속에 있는지도 몰라. 어떤 때는 내 몸이 이 가방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아. 세상이 싫을 때는 이 가방 속에 들어가고 싶고 나오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이걸 열고 나오고 싶고… 뭐 그런 마음이 있어요.” 

 

이북에서 피란 나와 힘든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베트남 참전을 하고 돌아와 영등포 시장에서 가방 장사를 시작했다.

십 수 명의 직원을 두고 가게를 세 곳이나 운영하다가

12억 부도를 내고 결국 파산했다.

사업이 망한 것과 동시에 결혼도 깨졌다. 

 

  “이거는 끝난 거예요 갑자기 왜 업이 총체적으로 망하느냐 하면 그때 많은 외국 상표가 한국으로 상륙을 했어요. 우리나라 상표는 거지가 돼 버린 거야. 농구면 농구 야구면 야구 축구면 축구 골프면 골프… 외국 메이커가 다 있어요. 이것들이 우리나라 상표를 싹 망가뜨려버렸어. 그때 빨리 이 직업을 떠나야 했는데 운명이라고… 그게 안 되더라고.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온 거예요.”  

 

할아버지는 베트남 참전 이전부터 이후 오십 년 동안의 사적 역사를

앉은 자리에서 세 시간에 걸쳐 풀어냈다.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강약이 실린 단어들이 리듬을 타고 문장을 만들었다.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에 푹 빠져 감탄사만 연발했다.

헉, 와, 이럴 수가, 어머나, 아이고… 그야말로 소리꾼 옆의 고수가 되어 있었다. 

 

  “제가 평소에 가방과 대화를 많이 해요. 여자 물건은 ‘야 너 왜 빨리 시집 안 가냐 빨리 시집 좀 가라’ 남자 가방은 ‘야 너 이러다가는 장가도 못 가고 혼자 살아야 해’ 이걸 수없이 이야기해요. 장사가 안 되니까 이 가방이 나한테 너무 오래 있는 것도 미안해. 그래서 빨리 임자를 만나서 따뜻한 방에 가서 잘 살았으면 하는 거예요. 근데 그 말을 하고 바로 그날 시집가잖아요? 진짜 기분이 좋아. 그리고 그렇게 궁상을 떨면 재미가 있어. 이 가방을 물건으로 보는 게 아니라 사람으로 보고 또 나이를 내가 측정하고.” 

 

도도하게,

꾹 다문 입술로,

넋이 나간 듯,

희미하게 웃거나,

어두운 낯빛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수십 개의 가방들.

매대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얼굴들이 이제야 보인다.

얼마의 가치가 아닌 하나의 표정으로 거기에 앉아 있다. 

 

  “앞으로 살아야 할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세상이 내 가방을 좋게 안 보더라도 내 직업은 내가 다듬고 나가야지. 이제 뭐 한 십년 더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장난감처럼 만져보다 죽어야지.” 

 

 

 

 

 

 

 

 

 

 

 

 

2020 이야기청 프로젝트
노인의 삶에 예술로 공감하는 이야기집
활동공유회 '사사이람'

 

2020년 11월 4일부터 11월 14일까지 
서울시청 시민청 시민청갤러리

사전 예약제 전시 관람
신청 링크 http://url.kr/MmHA9F

 

 참여예술가
강철, 고미랑, 공하성, 김선교, 김신혜, 김윤정, 김준서, 김찬우, 김태희, 남정근, 동그랑, 박상현,

박일석, 백세미, 서인혜, 성효주, 신동혁, 양윤희, 우희서, 유은정, 육끼, 윤희경, 이려진, 이주원,

장은실, 장효강, 정지선, 정찬민, 조은별, 조혜영, 진저, 채병연, 채수진, 하동국

 

 주최  서울특별시
주관  선잠52 '이야기청(聽)'
 후원  성북문화재단, 송파문화재단, 영등포문화재단
 협력  돌곶이생활예술문화센터, 사회적협동조합 가가호호돌봄센터, 사회적협동조합 행복한돌봄,

서울문화재단, 성북정보도서관, 송파시니어클럽, 아리랑도서관, 영등포구노인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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